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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O한 일상

아들 녀석, 나에게 화두를 던지다.

by zoo10 2012. 3. 29.

왜 술 먹었어요?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들 녀석이 저녁 반주로 두어잔 걸치고 퇴근한, 지 아빠를 보고는 핀잔을 한다. 이 녀석 의미없이 툭 장난처럼 한 얘기겠지만 침대에 누우니 아들 녀석의 말이 다시금 생각이 난다. 왜 술을 마셨을까?

내 어린 시절의 술은 그리 좋은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주사와 함께 찾아오는 늦은 시간의 고성을 아주 싫어했더란 말이다. 그럼에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나는 주사가 없기를 아니 술주정을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 해왔다. 고작 해봐야 토악질 정도..

그렇지만 얼마전에 오랜만에 너무 마신탓에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아이들 앞에서도 창피했지만 나도 모르게 애먼 화풀이로 욕실 기구 하나를 부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무지 괴로워 했었다. 그 뒤로 좀 자제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어두워지면 생각이 나긴 한다.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끝나고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는 모두 술을 마신다. 그게 업무의 연장이든 친구들과의 만남이든 술이 빠진적인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술자리에서 술잔을 비우면서도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아들 녀석이 물었던 것이다.

난 왜 술을 마실까?

팔짱을 끼고 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딱하 그럴듯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습관처럼 관성처럼 의례적으로 분위기상 그리고 쓰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쓰디 쓴 기억을 더 쓴 술로 덮어 버리려는 것일까?

이런 시덥지 않은 생각을 했다고 해서 술을 끊거나 일부러 멀리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최소한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겠지. 누구는 술을 예찬하는 글을 쓰고 누구는 술과 함께 죽어가기도 하고. 바라건데 나에게도 이렇게 거창하진 않지만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봐야 겠다.

아참! 내일 전체 회식이다. 2주 동안 몸 사린 보상으로 마구 퍼대시면 또 곤란해 질텐데. 내일은 아들 녀석에게 술을 마신 이유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을까나..

이게 왠 그지 같은 생각들인지.. 그래도 왠지 모르게 이것에 대해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그 이유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오늘도 내일을 위해 기억의 한 부분을 지운다.